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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클럽_5th 폰트클럽 타이포세미나

2011-12-16 | 1412

 

 

안병국 디자이너에 이어 캘리그라퍼 강병인 작가의 타이포세미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해 소개한다. 강병인 작가는 우리 글씨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묵향이 나는 글씨와 놀아본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길 당부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지난 2011년 12월 16일에 진행된 폰트클럽의 다섯 번째 타이포세미나는 캘리그라퍼 강병인 작가와 안병국 디자이너가 재능 기부 방식으로 참여하고, 수익금 전액을 사단법인 굿피플에 전달한 폰트클럽의 2011년도 마지막 행사였다. 이날 세미나에서 강병인 작가는 강연 후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2012년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는 폰트클럽 회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취재. 윤유성 기자 outroom@fontclub.co.kr
캘리그라피

“동양에서의 캘리그라피(상업서예)는 어떤 글을 지필묵이나 다양한 필기도구를 이용해 목적성과 객관성에 부합하는 글꼴을 만들어 내는 작업입니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강병인 작가의 정의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작업하는 디자인서예, 즉 캘리그라피는 한글이 갖는 글꼴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전통 서예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이면서도 디자인적인 글꼴로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설명이다. 서예가들의 정신과 철학을 서법에 근거해 글씨로 표현하는 전통서예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독창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순수 서예와 함께 상업적인 목적의 캘리그라피 작품들도 최근에는 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마케팅, 홍보 전략에 맞춰 처음부터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캘리그라피 작업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소는 ‘가독성’일 것입니다. 순수 서예 작품을 광고나 디자인 작업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가독성입니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캘리그라피는 이 외에도 조형성, 독창성, 심미성 등을 갖춰야 합니다. 감성적이면서 해학적인 멋도 담아낸다면 금상첨화겠죠.”

캘리그라피는 정형화된 디지털 폰트와도 비교된다. 캘리그라피는 정형을 깬다. 순박함, 순수함, 날카로움, 시골스러움, 도시적인 느낌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틀’이 없기 때문에 광고를 만들고 포장 디자인 작업을 하고 홈페이지를 디자인할 때 각각의 컨셉에 맞춰 새롭게 글씨를 써야 한다. 강병인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드라마와 영화 타이틀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파악하고 작품의 특징과 타깃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접근은 이성적으로 하지만 결과물은 감성적으로 표현되는, 그것이 캘리그라피의 매력이자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캘리그라피(전통서예, 디자인서예, 손글씨)와 폰트의 차이

디지털 폰트캘리그라피
기계적(디지털)아날로그적, 다양한 이야기
경직, 직선, 인위인간적, 자연, 곡선, 무위
통일, 조화, 정형화정형화의 탈피 - 변화, 동세
이질적동질성(우리 것)
기능성기능을 뛰어넘어 미학적
차갑다따듯하고 포근하다
고급순박함 속에 고급스러움
서양동양적인 멋과 여유
여럿을 위한 폰트단 하나만 존재
신문화전통과 신문화를 대변
이성적감성적
 독특함 - 가치창조
캘리그라피와 한글

한글을 만드는 폰트 디자이너를 포함해, 한글로 디자인하고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퍼 모두 ‘한글’의 매력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강병인 작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캘리그라피의 근간을 이루는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강조하며 훈민정음 창제 배경과 한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콩, 쿵, 쾅, 똥 등 순수한 우리말 캘리그라피 작업을 예로 들며 소리와 글자의 모양이 유사하고 실제 모양도 닮아있음을 설명했다. 한글은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 사람, 즉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이나 소리, 그 밖의 세상 모든 소리를 글씨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강병인 작가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모아 쓰는 한글의 특징을 설명하며 그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1930년대에는 한글을 알파벳처럼 풀어 쓰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종성 때문에 한글이 배우기도 쓰기도 어렵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발견되고 훈민정음 창제원리가 밝혀지면서 한글 풀어쓰기 주장은 수그러들었습니다. 종성이 없으면 한글의 멋이 반감됩니다. 종성이 있어 한글이 아름다운 문자로 완성되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죠. 한글 체계를 이해하고 모음만 잘 활용해도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네모와 세모, 동그라미만 있으면 모든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한글 속에 숨어있는 세 가지 기초도형만 찾아내면 한글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확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캘리그라피 작업

서예에서는 ‘획(劃)’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중요한 만큼 좋은 획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전에 쓴 글씨에는 향기나 기운이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강병인 작가는 소리꾼에 빗대어 설명했다. 좋은 획을 얻으려면 ‘득음’하기 위해 피를 토하며 연습하는 소리꾼만큼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강병인 작가는 그간 ‘득획’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해온 캘리그라피 작품을 소개하며, 그 의미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 2006, 2007년도 진로 참이슬 Fresh BI 캘리그라피 작업▲ KT&G 아리랑 담배 캘리그라피 작업
“진로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고 좋아하는 술이었는데 캘리그라피 작업 의뢰가 들어와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글씨를 굉장히 많이 써봤죠. 혼자 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경쟁 프레젠테이션이어서 많이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리랑 담배 글씨를 작업할 땐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참 많이 들었어요. 지역마다 가사도 다르고 음률이 다르고 흐르는 정이 다릅니다. 우리의 한과 얼이 어우러져 애틋함이 가슴을 찌르기도 했죠.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담배였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필요했어요. 외국인이라면 한국을 다녀왔다는 기념으로 한국적인 모티브의 디자인을 선택할 것이라는 마케팅 전략이 있었죠. 디자인을 바꾸고 매출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 2009충무로영화제 타이틀 및 BI 캘리그라피
“충무로영화제의 새로운 BI 작업에서는 ‘충무로’라는 글자가 갖는 조형적 특징과 영화제 성격뿐만 아니라 한글의 아름다움까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한 충무로 영화제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죠. ‘충’자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세계로 나아가는 영화인들의 의지를 담았고, ‘무’자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무예의 정신에서 나오는 힘과 영화예술인들의 끼를, ‘로’자에서는 상서로운 새 봉황이 날아와 앉은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좋은 글씨를 쓰려면 시작하는 자음은 무엇인지, 끝나는 종성은 무엇이고 어떤 모음이 들어가는지 등 쓰고자 하는 글자들을 자형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글은 삼분법이에요.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고 합해집니다. 글자를 분석하고 그 안의 관계를 파악해야 글씨를 다양한 표정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 동대문구 BI 캘리그라피
“동대문구가 청량리를 중심으로 신교통 중심지의 역할은 물론 세계로 뻗어 나가는 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업입니다. 서울의 문은 동대문이라는 메인 컨셉을 바탕으로 전통, 위엄, 차별화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동대문 기와의 지붕 선을 글꼴에 담아 동대문구의 상징인 동대문을 자연스럽게 표현했죠. 여러 시안 중에 주민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 <공주의 남자>(KBS2 수목드라마), <엄마가 뿔났다>(KBS 주말드라마), <천일의 약속>(SBS 월화드라마), 영화 <의형제> 타이틀 작업
▲ 숲(위), 꽃, 봄(아래, 한글세움_ 캘리그라피 강병인, 쇠작업 이근세)
“산과 숲이 있어 사람이 있고 숲은 사람의 어머니다. 자연은 언제나 위대한 존재,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숲은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음의 변화를 적절히 주면 소리나 감정, 형태를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한글의 아름다움이자 조형적인 특징입니다. 숲에 들어가면 나무와 풀 등이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서정연합니다. 글씨도 마찬가지에요.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죠. 정형화되면 죽은 글씨에요. 질서 안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자연에서 해답을 찾을 때도 많습니다.”
◀ 2007 캘린더 작업
“여유라는 작품에서는 ‘여유’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글씨에서도 보여주기 위해 초성과 중성 특히 모음의 간격을 넓게 했어요. 글자는 집과 같아요. 균형이 잡혀야 하죠. 그래야 제대로 서있을 수 있고, 그것이 좋은 글씨입니다. 전체적인 조화가 필요하죠. 작업도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을 만나면 클라이언트 때문에 힘들다는 푸념을 듣곤 해요. 클라이언트를 둔 창작자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일이지만 안타깝죠. 작업자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접근할 때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해요. 저 또한 마음대로 쓰고 그릴 수 있는 순수 작업과 전시를 병행하며, 정서적으로 여유를 찾는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캘리그라피
“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어떤 분의 글을 쓰면서 고민하다 찾아낸 오륜기에요. 올림픽을 유치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 작품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륜기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한글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한글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보여줌으로써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 한글이 부활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의 상징으로, 감성적인 디자인의 모태로 타이포그래피 시작점이 되었죠. 한글 캘리그라피는 새로운 디자인 장르이자 문화로 자리잡아갈 겁니다.”
▲ 2011 서울디자인페스티벌 Designer's Rab 출품작
쇠로 만든 입체시각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 류시화, 캘리그라피 강병인)
“이 작품은 활자와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류시화 시인의 시들을 활자를 벗어난 캘리그라피, 종이를 벗어난 쇠로 옮긴 작업입니다. 시인의 감성과 시어 속에 배어있는 날것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시각시 작품이에요. 기존에 활자와 종이로 만든 책에서는 앞의 시와 뒤의 시가 단절되어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책 속의 모든 시들이 만나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파리의 에펠타워,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거대한 ‘한글’ 조형물을 세우고 싶다는 강병인 작가의 꿈을 듣는 사이 4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강연 시간은 1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500석 규모의 강연장을 가득 메운 디자이너들에게 세종대왕의 배려와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줄 것과 ‘소통(疏通)’이라는 단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어 ‘자연’을 먼저 배려하는 소통의 자세를 가져줄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매듭 지었다.

“자연 속에 디자인과 글씨의 원리가 들어있고 자연과 사람을 배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를 감동시키고 그들을 부드럽게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그 작품만의 스토리가 되겠죠. 또한, 일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서예 전공자도 아니고 유명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지만, 제 일을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독학으로 제 글씨를 쓸 수 있었고, 지금의 강병인이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전에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http://shop.fontclub.co.kr/atTypo/typoView.asp?boardtype=42&subtype=00&boardnum=8059&page=3&seltype=&txtsearch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