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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s Hangeul Story한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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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서 2017년까지 강병인의 글씨 이야기

2017-10-25 | 529

 

 

 

다시,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다시, 걸어가겠습니다.

 

그동안 홈페이지 관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특히 순수작품은 작업연도 순으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개편한 홈페이지에서는 대폭 보완을 했습니다.

 

오래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은 내보이기 민망할 정도의 글씨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개하는건 한 가지 믿음 때문입니다.
그림이든 글씨이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는 것이 삶의 바른 자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의 멋글씨, 즉 캘리그라피의 시작점일때를 되돌아보면 너무도 글씨를 못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첫째는
글씨를 좋아하고 글씨 쓰는 일을 즐겼기에 가능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오직 독학으로 글씨공부를 하여 서예공부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저를 더욱더 채찍질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족한 저의 글씨를 사랑해 준 많은 기업과 디자인회사 대표님,
디자이너분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것은 분명 좋은 글씨를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라 여기며, 정진하겠습니다.

 

또한 지난날을 돌아보며 정진의 밑거름을 삼고자 합니다.
다소 반복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리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90년대 초 일본여행에서 발견한 디자인적인 서예, 캘리그라피
90년대 초, 일본 여행을 통해 서예가 디자인적인 쓰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97년 IMF,
일을 하고 결제받은 어음들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운영하던 디자인회사를 눈물로 접었습니다.

 
신용불량자,
가장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등 저 끝 모를 바닥의 끝까지 내려간 98년,
그래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면 캘리그라피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붓글씨, 즉 서예였습니다.
서예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오직 캘리그라피 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멋글씨, 즉 캘리그라피를 준비했습니다.
 

1999년, 강병인 디자인적인 캘리그라피의 출발

그 첫 작품이 99년 만든 일러스트 그룹 '다비전'의 로고입니다.
多Vision, '많을 다'자를 새 두 마리가 비상하는 모습으로 표현, 이 그룹의 영원한 발전을 빌었습니다.

글이 가진 의미를 글씨에 담아내는 것,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글씨에 담아내는 것,
제품이 가진 속성과 마케팅 전략, 소비자의 욕구까지 담아내는 것,
드라마나 책의 내용까지 타이틀 글씨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이것이 이른바 디자인적인 쓰임의 글씨,
강병인이 하고자한 디자인적인 캘리그라피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그룹 '다비전'의 멤버들이 이 로고를 좋아해 주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캘리그라피의 길을 준비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또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게 됩니다.

 

'HOW'와 'PRINT'라는 잡지를 아실까요.
'HOW'는 좋은 광고들을 수록한 잡지이고, 'PRINT'는 좋은 편집 디자인물을 모은 잡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잡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고,
99년 처재의 보증으로 오백만원을 대출해서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프로들의 작업물을 모았다는 의미의 <프로워크>라는 그래픽 잡지입니다.
사명감으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객기를 부린 것이 되었고,
2년 정도 발행하다가 경영미숙으로 결국 폐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얻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거래하던 인쇄소에 인쇄비를 어음으로 결제했는데,
IMF 당시 그것이 부도가 나 인쇄비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저의 재기를 위해 창간부터 폐간 때까지 잡지인쇄를 무료로 해 주었습니다.
필름 출력도 마찬가지였으며, 제본도 모두 협찬을 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이 분들의 고마움을 한시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잡지를 만들면서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여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긴 것은
지금도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잡지를 만들면서도 계속해서 캘리그라피를 실험하였습니다.
잡지를 폐간하고 2000년 중소 광고회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로고나 광고의 타이틀을 캘리그라피로 써서 제안하고 광고주의 반응을 보게 됩니다.
 

2002년,
그리고 2001년 광고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캘리그라피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 시장을 열고자 했습니다.
 

작업실 이름은 '술통'으로 정했습니다.
'글씨 하나로 술술 통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피어나는 그날까지'라는 나름의 주제의 글도 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정도의 목표를 정하고 지금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한글서예를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한글이 단순해서 못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기존의 임서 위주의 서예에서 벗어나 어떻게 창신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당연히 서예의 바탕 위에 디자인적인 발상과 표현방식을 접목하여
한글 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한글의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 주고자 고민했습니다.
 

법고창신, 한글서예의 법고는 판본체와 궁체입니다.
당연히 좋은 글씨를 쓰려고 한다면 이 판본체와 궁체를 기본적으로 잘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기본을 익힌 그 다음이 없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인사동 등에서 개최되는 한글서예 전시를 무척이나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판본체와 궁체 위주의 글씨들이었고 구도도 모두 비슷했습니다.
 

99년 작업한 '많을 다多'를 '비상하는 새'로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말에 맞는 글씨,

'바람'은 바람이 불고,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 가지고 되고 그 가지위에 꽃이 피는 '봄'을 왜 못 쓴단 말인가.

전통의 답습이 아니라 현대적인 재창조, 재해석으로써의 한글서예, 이전에 없던 새로운 한글서예로
한글 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이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한글서예의 예술적 가치를 한층 끌어올려 그 당시(90년 대 말과 2천년 초) 궁체나 판본체, 한문서예가 아니면
서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협된 시각을 바꾸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전통의 현대적인 변용으로써 디자인적인 캘리그라피를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서예와 디자인의 접목을 통해 한글의 다양한 쓰임과 서예의 변용을 고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씨도 쓰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찾는 것과 함께
캘리그라피를 디자인의 한 분야로 키워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2002년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 시장을 열어보겠다고 당차게 출발했지만,
그 당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도 생소했고, 글씨에 돈을 지불한다는 개념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2003년 다시 선배 디자인회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월급은 고정으로 하고 대신 캘리그라피 일을 근무시간 외에 할 수 있도록 부탁했습니다.
 

세번째는 글씨를 돈으로 보지말자였습니다.
오해가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면서 경영자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재에 밝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또한 돈을 벌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씨를 쓸 수 있다면 좋다,

그러니 글씨를 돈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직 좋은 글씨만 쓰자가 세번째 목표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나의 캘리그라피의 시작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는 무척이나 서예를 좋아했지만 글씨를 잘 쓰지는 못했습니다.
서예를 전공하거나 큰 스승에게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초등학교 6학년 이후는 모두 독학입니다.
그럼에도 이 멋글씨, 캘리그라피 시장을 열어보겠다고 덤볐습니다.
콤플렉스가 사람을 키우듯이 저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비교도 아니고 부러움도 아니다,
오직 나 자신만의 글씨,
나 자신의 삶을 글씨에 담아 내고자 하였습니다.

눈물로 시작한 멋글씨, 캘리그라피의 길은 이제 2019년이면 20년이 되어 갑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작업한 결과물들이 많이 쌓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손에서 나온 소중한 글씨들입니다. 어여삐 보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시한번 저의 부족한 글씨를 사랑해 주신 기업과 디자인회사 대표님, 디자이너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고마운 분들이 더 있습니다.
캘리그라피를 시작할 때는 이 분야에 나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
"캘리그라피계의 두번째 테이프를 끊으셨군요"

아, 그러면, 첫번째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찾아보니 바로 필묵이었습니다.
필묵을 만든 김종건 선생, 이상현 선생은 90년대 말부터 나와 같은 생각이지만 다른 길에서
캘리그라피를 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디자인과 서예를 접목한 캘리그라피 시장을 열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두 분은 서예가로서 서예를 디자인시장에 접목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사단법인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도 함께 창립하게 됩니다.
두렵고 힘든 길을 두 분과 함께 했기에 오늘의 저도 있습니다.
이 두 분이 있었기에 캘리그라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빠르게 발전을 하게 됩니다.
두 분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끝으로
이 큰 한글을 더욱 가치 있게 키우고 지키는 일에 자그마한 힘을 보태어 나가겠습니다.
그런 노력을 실천하기 위해서 작업실도 세종나신 마을로 옮겼습니다.
글씨 하나가 세상에 어떤 의미가 될지 고민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또한 지난날의 글씨들을 돌아보며 정진의 밑거름을 삼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한글창제 574돌
한글반포 571돌

 

일천십칠년 시월 가을 하늘 높고 푸른 날
세종나신 마을에서

 

한밝 강병인 드림​